한국자치학회는 2006년 창립한 현장 중심형 학술단체로서
주민자치 실질화를 통해 지역과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주민자치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근현대사에서 주민자치는 수많은 질곡을 거듭하면서 지금은 기형에 가까운 모순적인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먼저,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은 조선의‘ 향촌자치’다. 시대적으로 나눠서‘ 조선-일제강점기-한국’에서 주민자치가 시행됐던 시기는‘ 조선’이 유일하다. 조선의 향촌자치 경험을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해서 한국의 주민자치를 그려보기로 하자.


조선 향약의 당사자는 ‘관료-양반-주민’이다. 향촌자치라면 당연히 주민이 주체가 되는 것이 맞겠지만, 조선의 향약은 불행히도 재지사족인 ‘양반’이었다. 말하자면 양반이 관료를 배제하고 ‘주민’을 직접 지배하는 구도였다.

 

 

전통적으로 관료의 지배는 조세와 병역 등의 기본적인 의무에 국한 되지만, 조선의 향약은 향촌의 사회적 문제(鄕務)와 주민의 도덕적 문제(約務)까지 양반이 장악하도록 하는, 말하자면 향촌자치제도가 아니라 양반의 향촌지배체제였다.

율곡이 지적한 향약의 문제점
율곡은 이미 자신이 축조하고 시행한 서원향약·해주향약의 경험을 토대로 여씨향약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충분히 파악했으며, 향약을 전국적으로 시행하자는 정책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삼가 살피건대, 남전여씨(藍田呂氏)의 향약(鄕約)은 강령이 바르고 조항이 상세하니, 이것은 동지와 선비들이 서로 약속해 예(禮)를 강구 하는 것이지, 널리 백성들에게 시행할 수 없는 것이다.”율곡의 지적은 향약의 조항이 선비들에게는 맞으나 주민들에게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즉 향약이 추구하는 향촌공동체는 향촌자치로 이룰 수 없으며, 나아가서 주민들이 원하지 않고 이룰 수 없는 공동체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양반들이 향촌공동체를 주도하는 것에 대해서 율곡은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토호(土豪)들이 향약을 핑계로 백성들에게 괴로움을 끼칠 것이 뻔하다. 이것을 누가 단속할 것인가. 만약 향약을 행하게 되면 백성들은 반드시 더욱 곤란하게 될 것이다.”
향약을 양반들이 틀어쥐고 쥐락펴락하면 주민들의 피해는 관료의 관치보다도 훨씬 더 심각할 것이다. 향촌사회의 경영을 사림(士林)이 독점하게 되면, 비록 학문적으로 엘리트일지 모르지만 향촌의 경제·사회·정치적인 일까지 잘 경영해 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율곡은“ 아니다. 다만 지배만 할 것이다”로 답한다.

 

허엽의 주장과 율곡의 반론
양반들이 향약으로 주민을 지배할 것이라는 율곡의 지적에 대해 향약론 옹호론자 허엽은 “지금 세상에는 착한 이는 많고, 착하지 않은 이는 적으므로 향약을 행할 수 있소”라고 했다. 허엽의 주장대로 하면, 착한 양반들이 지배하면 향촌자치는 잘 될 것이고, 선량한 양반들의 지배로 향촌은 도덕적인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향촌의 ‘공동’과 향촌의 ‘자치’의 차이를 우리는 읽어야 한다. 향촌은 외부의 요구나 지휘에 의해서 공동은 할 수 있지만 자치는 할 수 없다. 향촌의 자치를 엘리트인 양반에게 맡기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허엽에게 율곡은 웃으며“ 공은 마음이 착해 사람의 착한 것만 보았으나, 본인은 착하지 못한 사람이 많게 보이니, 이것은 필시 내 마음이 착하지 못해 그러할 것이오. 다만 전(傳)에‘ 몸소 가르치면 좇고, 말로만 가르치면 시비만 한다’ 했으니, 지금 향약이 바로 시비가 안 되겠소?”라고 반론했다.


조선의 향촌자치가 주는 교훈
향약은‘ 양반-상민’의 관계에서 양반은 상민을 교화하는 사람으로, 상민은 양반의 교화대상자로 상정하지만, 율곡은 그런 프레임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아무리 선량한 양반이라고 하더라도 상민들과 다른 생활을 하므로 구조적으로 이해가 부족하고, 지도가 부적절해 시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향촌자치는 양반들의 교화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자치로 이뤄진다는 점을 묵시적인 전제로 율곡은 양민(良民)을 피력한다. 유명한 양민설(良民說)이다.


율곡의 지적대로 향약은 지방 사림들의 지위를 강화해 주민들의 삶을 구속하는 속박의 굴레였다. 지방의 유력한 사림은 향약의 간부인 약정(約正) 등에 임명됐고, 일반 농민들은 이에 어쩔 수없이 자동적으로 구성원에 포함됐다. 그 결과, 사림들은 농민에 대해 중앙에서 임명된 지방관보다도 더 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면서 그들의 사회적 기반을 굳혀 갔다.

 

조선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말자. 조선의 향촌자치는 향약-상하합계-촌계의 과정을 거치면서 관료의 지배와 양반의 지배를 벗어나면서 두레·계 등으로 발전했다. 주민들은 민초다. 신분제가 엄격한 조선에서 향촌을 자치하기 위해 ‘불문율’이라는 향촌의 자치법을 자발적으로 형성했다.

 

조선의 주민들에게는 우리가 눈여겨보고 배울만한 향촌 자치력이 있었다.

 

 

2018년 1월

한국자치학회장 전상직

Posted by Nam y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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