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치학회는 2006년 창립한 현장 중심형 학술단체로서
주민자치 실질화를 통해 지역과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2013년 한 해 동안 대한민국의 주민자치에는 괄목할만한 진전이 있었다. ‘주민자치’라는 명칭으로 덧씌우기를 해서 읍·면·동장의 보좌기구로 만들어 놓은 주민자치위원회를 실질적으로 주민住民과 더불어 자치自治를 할 수 있도록 재구성한 일이다. 그 재구성과정을 돌아보기로 하자.


주민자치를 업業으로 원願으로
주민자치 시행초기에 주민자치위원회가 읍·면·동이라는 지역사회의 허브가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에 ‘주민자치 실질화 토론회’를 전국적으로 시행했다. 사회안전망으로도 기능하고 직접민주제를 구현하는 주민자치住民自治가 되기를 업業으로 원願으로 분주하게 노력했다. 여기서 ‘업’이란 주민자치에 몰입하는 것이고, ‘원’이란 주민자치를 완성하는 일이다. 본인은 주식회사 세상만들기 대표이사로서 혈혈단신으로 광주, 대전, 청주, 서울에서 ‘주민자치 실질화 토론회’를 앞장서서 개최했다.

주민자치를 행정보조로
초기에 많은 시민운동가들이 주민자치에 관심을 보이고 뜻있는 읍·면·동장들도 여기에 호응해 실질적인 주민자치가 순조롭게 출범出帆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주민자치위원회 출범 형태를 나눠보자면 첫째, 주민자치 실질화 토론회의 영향을 받아서 지역사회활동가들로 이뤄진 실질적인 주민자치위원회와 둘째, 종전의 읍·면·동 자문위원으로 재구성한 주민자치위원회 두 가지 형태로 출범했다. 그러나 한두 해가 지나면서 지역사회 활동가 중심의 주민자치위원회는 자취를 감추고 모든 주민자치위원회는 읍·면·동장이 직능단체협의회를 중심으로 구성해 읍·면·동의 보조기구로 변질시켜서 운영하게 됐다. 지금도 그렇다.


고양이에게 반찬가게를
그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첫 번째가 주민자치위원회 구성권이 읍·면·동장에게 있는 것이다. 공무원인 읍·면·동장은 행정行政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므로 자치自治에는 문외한이자 동시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관료인 읍·면·동장에게 자치를 하라는 것은 고양이에게 반찬가게를 맡아달라는 격이다. 자치를 지켜 달라고 부탁했는데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행정의 시녀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런 자가당착을 주민자치를 시범실시 하는 2013년 현재도 다시 또 범하고 있다.


체면廉도 부끄러움恥도 없이
두 번째는 ‘주민자치센터 설치조례’를 통해서 보면 주민자치위원장의 독자적인 권한은 하나도 없다. 무슨 일을 할라치면 읍·면·동장의 합의를 거쳐야 한다. 이타적인 의지를 가진 사람도 절차가 번거로우면 좌절하는데 사회적인 일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읍·면·동장을 설득해 가면서까지 마을의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열렬한 지사가 얼마나 있겠는가.


주민자치 관련 조례는 주민자치의 의지를 가진 뜻있는 사람을 좌절시키고 ‘마을의 일’을 가로막는 걸림돌에 불과하다. 주민자치조례는 뜻있는 주민의 이타적인 의지가 마을을 위해 발현될 수 있도록 재제정 되고, 개정돼야 한다. 시범실시 조례도 주민의 뜻을 살리는 조례가 아니라 행정의 수요와 편의를 위해 주민의 기여를 추수하려는 염치없는 조문에 불과하다.


소시민小市民이 시민市民되기를
세 번째는 주민의 문제다. 주민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피동적이 되도록 강요당했으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더더욱 심화됐고,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도 주민은 피동을 수용하는 소시민小市民으로 살아 왔다. 시민市民이 되지도 못하고 매우 가치가 있는 이타적인 일조차도 쉽게 나설 수 없어서 매사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기회적인 형식으로 대하는 삶을 살아 왔다.


복종服從에 익숙한 주민의 의식을 일깨워서 이제는 자치自治의 장으로 매우 친절하게 안내해야 한다. 평생교육이 있어도 주민을 자치의 장으로 안내하는 바람직한 강좌는 거의 없다. 인기 있는 강좌가 많을 뿐이다. 주민을 자치로 안내하는 강좌, 사업, 행사는 교육부와 안행부의 무관심과 무지로 이뤄지지 않는다. 주민이 하고 싶어도 뜻이 있어도 좌절되고 만다.


통치불능ungovernability이 우려된다
지금의 주민자치는 법령도 없이 조례준칙이라는 편법으로 시행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구조조정의 하나로 행정자치부가 일방적으로 기획해 입법과정을 피해 조례준칙으로 시행한 것이다. 사회적인 매우 중요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연구와 기획이 필요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경험이 없는 관료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됐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가 과부하에 놓이면 통치불능ungovernability이 된다. 또 관료가 잘 모를 수밖에 없는 주민자치의 영역까지 책임지지 못하면서 제어하려고 하면 반드시 통치불능이 되게 된다. 이미 주민자치 영역에서는 이런 현상이 여러 가지로 수차례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지 않는가?


주민자치를 재구성하다
한국주민자치중앙회는 주민자치의 재구성을 위해 중앙회와 광역시·도 주민자치회를 출점시켰다. 현행 주민자치제도를 혁명하자는 것이 아니라 주민자치의 외연을 보강하여 내실을 기하는 재구성을 기획해 광역시·도 단위로 주민자치를 확장한 것이다.


먼저 주민자치위원과 주민자치 학자, 주민자치 전문가가 나란히 공동회장을 맡아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발휘되도록 기획했다. 또 국회의원이 관심을 갖고 광역시·도의원이 관심을 갖도록 자문으로 위촉해 입법과 감사에서 자치라는 덕목이 발휘되도록 기획했다. 아울러 천주교·불교·기독교 지도자들을 모셔서 사회가 올바르게 기능하도록 하는 기획을 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광역시·도에 주민자치회가 결성돼 주민의 진정한 자치를 기치로 올리고 있다. 자치를 이뤄지게 하는 자세에 대해서 채현국의 말을 빌린다.


“난 도운 적 없다. 도움이란, 남의 일을 할 때 쓰는 말이지. 난 내 몫의, 내 일을 한 거다. 누가 내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는지는 몰라도 나까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일이다.”

 

2014년 1월

한국자치회장 전상직

 

Posted by 한국자치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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