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치학회는 2006년 창립한 현장 중심형 학술단체로서
주민자치 실질화를 통해 지역과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6.4 지방선거 포스터에서 가장 자주 뜨이는 문구가 ‘검증된 능력’이라는 말이다. 시장, 군수, 구청장 후보가 시·도 혹은 정부중앙, 나아가서 청와대의 경력을 검중된 능력이라고 자랑하는 것이다. 과연, 그 경력으로 자치단체장의 능력이 충분히 검증될 수 있는 것인가. 자치단체는 국가와 사회가 만나는 현장이다. 그 현장을 경영해 성공을 일궈야 하는 이가 바로 단체장이다. 그러므로 단체장에게는 국가의 경영 능력인 ‘행정’과 사회의 경영 능력인 ‘자치’가 모두, 그리고 동시에 요청된다

 

단체장에게 ‘행정능력’은 필요조건에 불과
행정은 공무원을 지휘하는 형식이다. 공무원의 수장으로서의 사무지휘를 하는 능력을 행정능력이라 한다. 서울시의 경우라면 서울시청 장의 능력이요, 전라남도라면 전남도청 장으로서 능력이다. 반드시 필요한 역량이다. 그러나 그런 역량은 이미 공무원에게는 기본으로, 자치단체에는 조직으로 갖춰져 있다.


역량이 부족한 경우에 교육으로 보충하고, 감사로 바로잡고, 지원으로 보완해주는 체계도 갖춰져 있다. 단체장이 행정의 달인이면 좋지만 행정능력이 가장 중요한 능력인가? 단체장은 공무원에게 없는 자치의 능력을 갖추는 것이 더 절실하지 않을까.


주민자치 실질화 토론회를 위해 시도지사 후보를 일일이 찾아서 많이 부족한 주민자치 실질화에 대해서 설명을 하며 시도지사가 됐을 때 정책적인 지원을 간곡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행정의 경험이 풍부한, 소위 행정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는 후보들의 대부분은 공무원과 다를 바 없는 견해를 주장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법령이 없어서 안 된다’ ‘감사에 지적되기 때문에 안 된다’ 등 단체장에게 주어진 조례제안의 권리조차도 간과하고 자치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지식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공무원과 같은 단체장은 자치단체의 재앙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안 된다’가 업무를 처리하는 형식의 기본으로 삼는다. 법령, 예산, 명령으로 하라고 해야 그때부터 공무원은 일을 시작한다. 그런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태도나 견해는 공무원이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행정의 안정성을 지키기에는 넘치도록 충분하다. 다양성이 풍부하게 존재하고 발생하는 자치단체의 단체장까지
공무원처럼 피동적이고 소극적이라면 자치단체의 발전에 거의 재앙에 가까운 불행이 될 수밖에 없다.


공무원의 최대치는 행정을 통제·관리로 행사하지 않고,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이다. 그 이상을 공무원에게 기대하는 것은 법령과 제도로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행정서비스 외연에서 성립하는 협치와 자치를 위해 단체장의 지휘력이 요청되는 것이다. 그런 요청을 받고 있는 단체장이 공무원과 같은 태도를 가진다면, 우리는 공무원다운 단체장이 초래하는 한계를 그대로 자치단체에서 살아가는 주민의 삶으로 떠안아야 한다.


그래서 공무원의 경력에만 갇힌 단체장과 공무원의 태도로만 일관하는 단체장은 자치단체의 재앙이 된다. 자치에 눈을 뜨고 있는 후보라야 한다.


주민이 원하는 지배를 하는 단체장 돼야 단체장은 주민의 뜻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어야 한다. 그래서 미숙하고, 왜곡되고, 다양한 뜻과 능력, 그리고 의지를 담아서 발효시킬 수 있어야 한다. 공무원보다 주민이 잘 할 수 있는 일은 당연하게 주민에게 돌려서 일들이 바람직하게 이뤄지고, 참여하는 주민의 긍지가 형성되도록 하는 것이 단체장의 몫이다.


단체장까지 공무원에 가세해 법령을 들이대고, 감사를 들먹여서 여전히 공무원 중심의 행정으로 자치단체를 관리하려는 것은 전형적인 관치를 하는 단체장일 수밖에 없다.


주민도, 자치도 없는 주민자치위원회 조례를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단체장은 주민이 원하는 지배를 전적으로 외면하는 것이다. 읍·면·동장이 주민자치위원회의 운영을 독점해 관치를 하는 것을 외면하는 것도 주민이 원하는 지배를 무시하는 것이다.
자치에 대한 기초 동의도 형성되지 않고 자치의 의지도, 제도도, 사업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주민이 스스로 하는 것이 주민자치라고 하는 단체장은 주민이 원하는 지배가 무엇이지 모르는 것이다.

 

주민의 자치력 함양이 단체장의 본

관료의 임무는 행정이라는 형식으로 자치단체를 위해 발휘되고, 주민의 역할은 자치라는 형식으로 자치단체를 위해 발휘된다. 자치단체가 관료자치의 행정력만으로 경영된다면 우리는 분권을 말할 필요가 없다. 국가가 말단까지 통치를 해도 무방하다. 분권의 의미는 현장에 있는 주민의 자치로 자치단체의 경영에 기여하는데 있다.


 

우리는 6.4지방선거에서 주민의 자치력을 함양할 수 있는 단체장 후보를 식별해야 한다. 그 식별을 위해 ‘단체장 후보 초청 주민자치 실질화를 위한 대담·토론회’를 실시했으나, 일부 당선이 유력한 후보는 거절했으며, 대담·토론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후보도 거절했다. 주민을 아직도 유권자로만 보고 선거의 유·불리를 판단하는 수준의 전근대적인 후보가 아닌가! 주민의 자치는커녕 주민을 지배하려는 후보일 것이다.


 

반면, 주민자치라는 생소하고도 까다로운 관점의 전환 없이는 참석하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 의지를 갖고 성실하게 대담·토론에 임해준 단체장 후보들에게는 경의를 표한다. 참여한분들이야말로 주민이 원하는 지배를 성공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분들이다.


 

주민자치, 단체장의 시혜 아닌 주민의 권리

또 주민자치 실질화 대담·토론회에 용기를 내어준 협의회장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단체장이 지역에서 갖는 제왕적인 권한에 맞서는 것으로 충분히 오해를 받을 수 있고, 공무원들이 반대를 상황에서도 본보가 제안한 주민자치 실질화 대담·토론회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용기는 우리나라 주민자치사에 길이 남을 것이며, 오래도록 주민관치를 주민자치로 전환하는 전기에 기여한 중대한 결단으로 기억될 것이다.


주민자치 실질화 대담·토론회는 단체장으로부터 주어지는 시혜를 실천하는 추종이나 협력이 아니라, 주민의 의지에 근거해 결정한 행사로서 주민의 당연한 권리다.


주민자치는 거절할 수 없는 시대의 제안

일본이 democracy를 처음 번역시 하극상下剋上으로 번역했다. 비민주적인 시각에서 민주는 분명 하극상이다. 관료의 행정을 중심에 두고 본다면 주민자치도 분명히 하극상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거절 할 수 없었듯이 주민자치도 이제는 거절 할 수 없다.

 

사람이 자치라는 형식으로 존재할 때 인격자가 되고, 마을이 자치라는 형식으로 존재할 때 공동체가 된다.

 

2014년 6월

한국자치학회 전상직 회장

Posted by 한국자치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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